[월간중앙] 탄핵과 내란 심판,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 “정파 초월한 ‘행동하는 양심’ 구현할 때” 프린트   
중민  Email [2025-02-25 11:07:26]  HIT : 979  

탄핵과 내란 심판,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

“정파 초월한 ‘행동하는 양심’ 구현할 때”

 

‘불법 계엄’부터 ‘내란 심판’까지, 학계 일각선 파시즘 징후 우려

尹 내란죄 둘러싼 논쟁 예상… 내란의 기본 개념 논증이 관건

극단 치닫는 양 진영, 사회 화합 이끄는 ‘소통 정의’ 필요한 때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hansjin@snu.ac.kr



2024년 12월 3일의 계엄 선포가 던진 충격이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 다. 그 뒤를 이은 일련의 사태가 사회 불안을 더욱 가 중시키는 양상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현 상황이 파시즘의 도래를 알리는 징후들이 아닌가 걱정한다. 여야를 떠나 전반적인 정치지형이 전체주의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 균열이 너무 깊어져 치유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에서 이 글의 목표는 제한적이다. 우리가 직면한 사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생 각으로 이번 기회에 단호히 끊고 매듭지어야 할 문 제가 무엇인지, 미래를 위한 개선책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법률 문제가 나오는데, 필자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며, 미숙한 점 이 있다면 너그러운 이해를 구한다. 

현재, 2024년 12월 3일 선포된 계엄을 내란의 관 점에서 다루고 있다. 때문에 형법 87조가 제공하는 내란의 개념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법률 조 항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행한 폭동’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보면, 국헌 문란은 내란의 목적이고 폭동은 내란의 수단이다. 따라서 목적과 수단의 유기적 관계를 규 명하는 것이 내란죄 구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국헌 문란은 형법 91조 2항에 명확하게 규정돼 있다. 그러나 폭동은 형법 87조에서 내란죄의 구성 요소로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사실 폭동은 유동 적이고 다층적이다. 폭행, 협박, 살상, 파괴, 약탈 등도 있지만, 테러리즘처럼 특정 목적을 향해 치밀하게 준비된 ‘실질적 위험’이 매우 큰 폭력 행사도 있다. 폭 동의 성격에 관해서는 보통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나 ‘급박하고 실질적인 해악’을 언급한다. 시민 생활의 평온을 심각히 해칠 정도의 위력이 전제된다. 

이번에 우리가 경험한 무장 군병력의 국회 난입은 현행법상 국헌 문란이고 폭동이라고 할 수 있다. 군 병력의 선관위 투입도 3권분립 정신에 반하는 폭동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폭동의 결과는 무엇인가, 실질적인 해악이 어느 정도로 구체화됐는가, 군대 동원 자체가 폭동인가 아니면 별도로 규 명해야 할 현상인가 등의 의문이 제기된다. 

이 글은 내란죄를 구성하는 폭동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관점에서 계엄의 결과를 내란죄로 처벌한 국내 사례를 살피고 불법 계엄의 재발을 막는 장치를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살피고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논하면 서 대통령 탄핵과 내란 심판에 관해 생각해보겠다. 

우리는 항상 분열과 위기의 시대를 살았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이것은 정도의 문제일 뿐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극단적으로 싸우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견 지했다. 좋은 미래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는 다른 것 같다. 오늘의 대중심리는 희망 대신 증오와 적개심으로 가득 찬 것 같다. 이런 상태는 일 종의 파국이 아닌가 한다. 


극단적 싸움에도 잃지 않았던 희망 사라진 시대 

파국의 심각성은 불법 계엄으로 민주국가의 위상을 현저히 훼손하고 수많은 부작용과 손실을 초래한 대통령이 반성 대신 지지세력을 선동함으로써 내전 양상을 부추기는 데 있다. 특정 기독교 세력이 정치에 뛰어들어 갈등을 심화하는 것도 걱정스럽다. 사 회통합의 보루가 돼야 할 사법부가 불신과 의혹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파국의 한 단면이다. 의회 권력을 독점한 거대 야당의 행태도 파국의 주요 원인이다. 이렇게 서로가 원인과 결과 로 얽혀 이리 가도 저리 가도 탈출구가 없는 상태, 캄캄한 터널에 갇혀 있어 도무지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 우리는 있다. 

주역에 의하면, 파국이 오면 변화가 생기고 변화 가 오면 소통이 이뤄지며 소통이 되면 새로운 질서 가 태동한다고 한다. 파국의 상태가 지속되면 사람 들은 힘들어한다. 자연스럽게 탈출구를 원한다. 이런 탈출의 욕구가 오늘날 개헌 캠페인으로 모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시기적으로 그럴듯하게 들린다. 우리는 어찌 됐든 탈출구가 필요하니까. 개헌을 통해 새로 운 출발을 하자는 제안은 나쁘지 않다. 미래를 희망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진입로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넘어야 할 산들이 겹쳐 있다. 우선 헌재의 결정에 대한 국민의 수용이 탈출구를 여는 문지방 이 될 전망이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사 람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공유했다. 그래서 헌재의 결정을 대승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극단적 인 분열, 파국의 상태다. 때문에 헌재를 바라보는 사 회의 눈이 전례 없이 날카롭고 까다롭다. 오직 한 틈의 허점 없이 공정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충실한 심의 과정을 거쳐, 분열된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감동적인 결정을 내릴 때 우리가 찾는 길이 열 릴 것이다. 단순히 탄핵의 인용이나 기각 결정이 중 요한 것이 아니다. 탄핵의 앞면과 뒷면을 공정히 살 피는 헌재의 지혜와 혜안이 절실히 요구된다. 

상황을 개관할 때, 헌재는 탄핵을 인용할 가능성 이 크다. 그러면 2개월에 걸쳐 대선을 치러야 한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개헌을 한다는 것은 시간과 절 차 면에서 어렵다. 아마도 유력한 대선 후보들이 개헌을 공약하는 것이 기대할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닐 까 생각된다. 단순한 공약이 아니라 개헌으로 예상되는 권력구조나 선거제도, 개헌 시기 등에 관해 기 본 합의를 이뤄 공동 선언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쉽지 않지만 이것이 이뤄진다면, 규범적인 면에 서 새로운 출발에 대한 희망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개헌을 추진한다면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개헌은 정치제도의 틀을 바꾸는 것인데, 이 것이 순기능을 할지, 역기능을 할지는 미리 알 수가 없다. 제도가 중요하지만 정치문화의 영향도 크다. 그런데 정치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적과 동지, 선과 악, 진보와 보수의 양극 프레임이 지속되는 한, 제도 개선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이라 하더라도 의도치 않았던 부작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문제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넘어 대선 후보로 확정되고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막강한 대통령 권력과 함께 의회 권력을 독점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개헌 합 의를 이행할 것인가? 권력의 생리상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정치사회 분열이 심화될 경우, 그 가 ‘대중독재’의 길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2016년에 보여준 민주주의 회복력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는 민주화 40년의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자생력 또는 회복력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가졌 다. 돌이켜보면, 1998년 역사적·평화적 정권교체가 민주화의 큰 분수령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6·25전쟁 이래 최대 국난이라고 불렸던 경제위기에 휩싸였다. 이때 시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을 자발적으로 전개했 다. 민주주의 자생력의 한 표출이었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후보 노무현의 연합 파트너가 선거 직전에 돌연 약속을 파기하면서 민주 진영은 위기에 직면했다. 이때 노사모 중심의 전국적인 선거 캠페인 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그 힘으로 노무현 후보가 승 리할 수 있었다. 이것도 민주주의의 자생력이라 볼 수 있다. 2016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한 국정 혼란에 맞서 시민들의 촛불 시위가 지속됐으며, 그 힘으로 대통령이 탄핵됐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권위주의로의 회귀 경향에 대한 한국 민 주주의의 회복력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오늘은 어떤 상태인가? 현직 대통령이 탄핵과 내란 심판의 두 경로를 동시에 걷게 되면서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사회가 분열되는 양상을 보인 다. 이런 상태에서 2016년과 유사한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 안에 민주주의의 잠재력 또는 지지세력은 광범위하다고 믿지만 필자의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다. 이들을 모을 수 있는 정치력이 너무 빈곤한 것이 한 원인이다. 정파를 넘어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희 망의 연대가 유실되는 것도 원인이다. 그러나 필자 가 눈여겨보는 것은 2024년 12월 3일의 계엄 선포를 내란의 관점에서 다루면서 사회 분열이 더 심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과거를 잠시 되돌아보자면, 대통령 탄핵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 핵에서 시작해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 쳐 2025년 현직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심리까지 짧은 시간 안에 세 번 일어났다. 그런데 마지막 사건은 세계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 특이성이라 함은 헌법 77조 1항에 의한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형법 87조가 규정하는 내 란에 연동돼 현직 대통령이 두 경로의 심판을 동시에 받는다는 데 있다. 


불법 계엄과 내란의 관계는 복잡한 함수 

계엄은 법률에 규정돼 있어 다루기가 어렵지 않다. 계엄 자체는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리로 헌법에 근거 가 있다. 계엄의 성립 조건과 절차, 효과의 한계 등에 관해 계엄의 합법성을 규정하는 법조문이 있다. 이 규정을 어기면 불법이 되고 명백한 국헌 문란에 해 당한다. 형법 91조 2항에 의하면, 국헌 문란은 “헌법 또는 법률이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또는 “헌법에의 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기능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규정을 따를 때, 작년 12월 3일의 계엄 선포는 국헌 문란에 해당하는가 하는 논증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다수의 공감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사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국정 혼란보다 훨씬 더 위중 하다고 할 수도 있다. 즉, 법률에 따라 계엄의 불법성을 깔끔하게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계엄 선포를 곧장 내란으로 규 정했다. 몇 가지 요소가 작용했을 것이다. 우선 계엄 선포에 따른 무장 군대의 국회 진입 상황을 생중계 로 지켜봤던 시민들의 공포와 충격이 매우 컸다. 국 회의 신속한 의결에 의해 계엄이 해제된 이후 곧 국 회에 나온 고위 군사령관들의 증언이 영향을 미쳤 다. 또한 1980년 신군부가 무력에 근거해 계엄을 전 국적으로 확대했고 광주항쟁을 진압한 것을 내란으로 단죄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내란 프레임을 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우리의 일상 언어나 기존 법률의 관점에서 ‘불 법 계엄=내란’의 공식이 자동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둘은 서로 연관될 수도 있지만 다른 차원의 것이다. 불법 계엄은 그 자체로 국헌 문란을 초래한다. 하지만 국헌 문란이 내란이 되려면 폭동이라는 내란의 성립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따라서 법리와 역사적 사례들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법률에 규정된 계엄과는 달리 내란은 훨씬 광범 위한 행동과 현상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당연히 불 법 계엄에 초점을 맞추면 결과가 명확하지만, 또 내 란 프레임을 사용하면 얻는 것도 있지만, 불필요한 혼선이나 잡음 또는 의혹을 자극할 개연성도 커진 다. 실제로 국회 측은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에 관해 심의하는 과정에서 내란 관련 부분을 철회함으로써 내란죄의 적용이 타당한가를 둘러싼 의혹을 조성한 측면이 있다. 이것은 곧 불법 계엄을 다 루는 것보다 내란죄를 다루는 것이 훨씬 더 까다롭 고 복잡한 문제를 내포한다는 점을 시사한 다. 따라서 정밀하게 살펴야 한다. 아울러 내란죄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가, 현명한 가, 또는 그 방식을 택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가, 혹시 의도치 않았던 부작용은 없는가 등을 살필 필요도 있다. 

시각을 넓혀 우리의 현 사태에 대한 해외 반응을 보자. 세계의 모든 매체는 한결같이 ‘계엄위기’(martial law crisis)의 제목을 내 걸었다. 간단명료하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에서 거론되는 내란죄를 언급할 경우, ‘insurrection’ (봉기) 또는 ‘rebellion’(반란) 같은 용어를 쓴다. 구 글에서 보듯이 ‘civil war insurrection’(내란 봉기) 같은 범주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런데 civil war의 개념에는 한 국가 안의 두 세 력 간 무력 투쟁을 뜻하는 ‘내전’과 정부 권위에 도 전하는 집단들이 조직하는 ‘내란’의 뜻이 포함된다. 근대사에서 내전의 대표적인 보기는 1930년대 중엽의 스페인, 1970년대 초의 칠레일 것이다. 스페인의 ‘인민전선’ 정부는 3년에 걸친 내전을 겪으면서 프랑코 장군이 이끈 군부에 의해 무너졌다. 칠레의 아 옌데 정부 역시 극심한 내전을 거쳐 붕괴됐다. 이 경 우에도 정부가 내란을 일으켰다고 하지는 않는다. 합법성을 지니고 있는 정부가 자신을 무너뜨리는 내 란을 한다는 것은 형용모순이기 때문이다. 내란은 정부와 대립했던 군부가 일으킨 것이었다. 즉, 내란 은 정부의 법적 권위 또는 정통성을 부정하고 이를 붕괴시키려는 반역적 행동을 지칭한다. 내란을 구 성하는 절대다수의 행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함의를 갖는다. 


내란의 기본 개념을 만든 역사적 사례들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내란 또는 내전이 계속됐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1860~ 61년 사이에 미국 남부의 11개 주가 미합중국을 탈퇴해 남북연합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최근에는 2021년 1월 6일, 대선에서 패배한 현직 대통령 트럼프의 선동에 의해 지지자들이 미국 의사당을 점거해 난동을 부리고 대선 결과의 최종 확정 의례를 저지시킨 사건이 있다. 이것을 우리 식으로 하면 내란이라 고 부를 수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봉기(insurrection) 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5명이 사망했고 수백 명이 부 상했다. 사건 발생 4년 차에는 1500여 명이 기소됐다. 그러나 2025년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는 14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면했다. 

영국 등 다른 서구 국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합법 적인 정부의 권위에 대항하는 집합 행동들이 시위 나 폭동, 민란, 반란, 반역, 선동, 선전, 모의 등의 형태 로 다양하게 일어났다. 때문에 내란에 관련된 다양 한 행동 유형들의 관계를 법체계 안에 넣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핵 심은 거의 비슷하다. 

필자가 해외 사례들을 통해 강조하려는 것은 문 제의 행위가 내란이든 반란이든 반역이든 선동이든 모두 합법적인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반정부적 폭력 행위로 규제한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통해 권력 찬탈이나 영토 분할, 국가권력의 붕괴 또는 분열 같은 최악의 사태를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 국가권력의 관점에서 내란은 자체 정당성을 위협하는 최대의 도전이다. 따라서 국가의 존립을 위해 가장 심각한 범죄로 취급하며, 극도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최 고의 처벌을 가한다. 내란은 실제의 폭력 행사만이 아니라 이것을 모의하고 선전하는 행동까지 엄격한 처벌의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내란죄는 유사한 방식으로 적용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이 주도했던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정면에서 반대했던 김중태 등 서울 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 학생을 포함해 5명을 1965 년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했다. 1970년대 유신 시절 에는 민혁당 재건위나 민청학련 같은 조직에 내란죄를 적용했고, 1980년 5·18 항쟁에 직면해서는 야당 정치인 김대중을 비롯한 많은 사람을 내란죄 올가미로 묶어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모두 반국가세력으로 규정됐다. 2013년에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 등이 5월 12일 회합을 통해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 내란 행위를 음모 선동했다는 이유로 구속기소 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내란죄는 정치적 성격을 띤다. 따라서 종종 시비가 일어난다. 그렇지만 합법 적이고 정당한 국가권력이 시민의 안전과 평화 보장의 전제가 된다는 종래의 관념에서 볼 때, 이를 위협하는 내란 행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은 어느 국 가나 비슷하다. 


전두환·노태우 내란죄로 처벌한 1997년 대법원 판례 

내란에 관해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197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이후,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 부 핵심 인사들이 12월 12일의 군사반란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압과정에서 범한 잘못을 내란 죄로 처벌한 것이다. 이 군부 쿠데타의 주역은 신군부 인사들이다. 이들은 당시 최규하 대통령을 압박하고 국무회의를 통제 조정해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 대했고, 광주시민의 항거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여기 서 계엄과 내란이 연결된다. 이 경우, 중요한 점은 계 엄의 실질 주체는 신군부였으며 신군부는 그들이 주 도한 군사반란과 계엄을 통해 ‘국가보위비상대책위’를 만들어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무회의 등을 무력화시켰고, 고도로 조직화된 군사폭력의 수단으로 광 주시민을 탄압했다. 그래서 이런 일련의 사태는 형법 91조 2항에 따른 국헌 문란이자 동시에 형법 87조의 내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계엄과 내란의 관계를 밝힌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판결에 담긴 뜻이다. 이 판결의 핵심은 내란을 구성하는 조직적 폭력의 사용, 즉 폭동을 상세히 열거하고 증명한 것이다. 

이 판결은 작년 12월 3일의 불법 계엄 문제를 다 루는 데 귀중한 참고와 안내 역할을 한다. 형법 97조에 의하면, 내란은 국헌 문란의 목적을 위하여 폭동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렇게 볼 때, 신군부는 ‘국보위’ 같은 통치기구를 만들어 합법적인 정부기구들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국헌 문 란을 가져왔고 많은 인명의 살해와 파괴를 수반하는 폭동의 방식으로 권력을 찬탈했다. 따라서 기본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신군부의 문제와 이 글이 다루는 현안 사 이에는 차이가 있다. 신군부는 군사반란을 일으킨 고위 군 인사였지만, 12월 3일의 계엄은 대통령이 선포한 것이다. 즉, 친위 쿠데타였다. 신군부에 의한 내란의 폭동 실체를 규명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현직 대통령에 의한 친위 쿠데타의 폭동 실체를 규 명하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 은 내란과 외환의 죄를 빼고는 소추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그를 수사하려면 형법 87조의 내란 죄를 적용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려면, 내란죄의 구 성요소인 폭동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 신군부의 경 우에는 폭동의 실체를 자세히 밝혔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의 경우, 불법 계엄을 밝히는 것은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만 신군부의 경우처럼 폭동의 실체를 명 확하게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회로를 택해 불법 계엄에 의한 군대 동원 그 자체가 폭동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 다. 그러면 폭동은 불법 계엄에 내재한 현상이 된다. 군대 동원이 없는 계엄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불 법 계엄은 곧 형법 91조 2항의 국헌 문란이 되고 동시에 형법 87조의 내란이 된다. 이렇게 개념의 회로를 단순화시키면, 사실 폭동의 실체를 규명할 필요도 사라진다. 그러나 현행 법체계 안에서 보자면, 내란의 핵심이 폭동인데 이렇게 접근해도 좋은가? 신군부의 경우, 폭동의 실체를 상세히 논증했다. 이번에도 폭동으로 규정할 수 있는 현상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 폭동의 결과는 무엇인가, 구체적 해악이 어떻게 드러났는가를 정확하게 논증하지 못한 채 내란 죄를 적용한다면, 의문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한편, 이에 관해 검증을 제대로 하려면 상당히 복잡 한 과정을 거쳐갈 수밖에 없다. 모의나 회합, 지시 등 이 폭동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명백히 현존하는 위험, 급박하고 실질적인 해악”이 증명돼야 한다. 


‘내란죄’의 정서적 의미와 법률적 의미의 간극 

여러 상황을 검토할 때, 대통령에 의한 불법 계엄의 피해와 손상이 매우 심대하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형법 87조에 불법 계엄을 명시하고, 불법 계엄에 의해 군대를 동원해 국헌 문란을 할 경우 이를 내란으로 취급하는 법규를 신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 다. 계엄이 대통령에게만 허용되는 특권인 만큼 이 것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면 내란이 된다는 강력한 억제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 리나라가 이번 경험을 통해 끊을 것을 확실히 끊고 도입할 것을 확실히 도입함으로써 민주주의 국가로 서 위상을 회복하고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얻는 계기 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장치가 아직 없는 법체계에서 본다 면, 잘못된 계엄 선포를 국헌 문란의 죄로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 간명하고 쉽게 합의를 도출하는 방법이었을 것 같다. 내란죄 적용은 현재의 법체계에서 도 가능하지만 폭동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이 필수불가결하다. 1980년 신군부의 경우, 폭동의 실체 가 다각도로 명확하게 규명됐다.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지켜볼 일이다. 아울러 이 경로를 택함으로써 야기된 일련의 부작용 도 간과할 수 없다. 

하나는, 우리의 일상 언어에서 일종의 형용모순이 생긴다는 것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생각 해보자. 1) 대통령이 불법적으로 계엄을 선포했다. 2) 대통령이 국헌 문란의 죄를 범했다. 3) 대통령이 내란을 주도했다. 앞의 두 문장은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은 국민의 선택에 의해 국가권력을 대표하는 위치에 오른 대통령이 스스로 합법적 인 국가권력을 무너뜨리는 내란에 앞장섰다는 뜻인 데,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 언어에 함축된 내란의 뜻과 법률적 차원의 내란 용어 사 이에 상당한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간격을 메우려면 불법 계엄이 곧 내란이 된다는 법을 만들고 사회적 합의를 얻는 절차가 필요하다. 

또 다른 부작용은, 법률적 개념인 계엄을 정치적 함의가 있는 내란 프레임으로 다루면서 법치를 둘러 싼 시비가 정치적 분쟁으로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여기에는 서로 다른 정치적 동기가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잘못된 계엄을 단죄하려는 입장에서 보자 면, 내란죄라는 프레임은 상당히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내란죄를 적용하면 국헌 문란죄와는 차 원이 다른 다양한 행위와 인물들을 대상으로 수사할 수 있게 된다. 내란의 개념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해석의 지평은 오히려 넓은 셈이고 모의, 선전, 선 동 등을 내란죄로 다스리는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반대로 수세적 입장에서 보자면, 필 사적으로 내란죄의 확대 적용을 반대하면서 법치의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전환하려고 한다. 전자는 계 엄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후자는 계엄의 뒷면에 있는 거대 야당의 정치 행태에 분노내을 주도했다. 앞의 두 문장은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은 국민의 선택에 의해 국가권력을 대표하는 위치에 오른 대통령이 스스로 합법적 인 국가권력을 무너뜨리는 내란에 앞장섰다는 뜻인 데,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 언어에 함축된 내란의 뜻과 법률적 차원의 내란 용어 사 이에 상당한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간격을 메우려면 불법 계엄이 곧 내란이 된다는 법을 만들고 사회적 합의를 얻는 절차가 필요하다. 

또 다른 부작용은, 법률적 개념인 계엄을 정치적 함의가 있는 내란 프레임으로 다루면서 법치를 둘러 싼 시비가 정치적 분쟁으로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여기에는 서로 다른 정치적 동기가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잘못된 계엄을 단죄하려는 입장에서 보자 면, 내란죄라는 프레임은 상당히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내란죄를 적용하면 국헌 문란죄와는 차 원이 다른 다양한 행위와 인물들을 대상으로 수사할 수 있게 된다. 내란의 개념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해석의 지평은 오히려 넓은 셈이고 모의, 선전, 선 동 등을 내란죄로 다스리는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반대로 수세적 입장에서 보자면, 필 사적으로 내란죄의 확대 적용을 반대하면서 법치의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전환하려고 한다. 전자는 계 엄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후자는 계엄의 뒷면에 있는 거대 야당의 정치 행태에 분노를 표출한다. 이렇게 동전의 양면이 드러나면서 정 치 지형에 따른 세력 결집이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잠시 뒤돌아보면, 탄핵 국면은 원래 민주당의 절 대적 우위로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점령군 같은 행태와 상황 오판으로 현재는 양 진영의 팽팽한 대결로 변했다. 서로 동기를 훤히 내다보고 있다. 둘 사이에는 타협이 없다.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열리면 좋겠는데, 현재는 감정이 압도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상태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파국에서 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헌재의 결정이 중요한 분 수령이 될 전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인용 때보다 훨씬 더 세심하게 분열된 국민의 마음을 헤 아리는 통찰과 배려가 요구된다. 의회 권력을 독점한 거대 야당이 그 권력을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일 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국가 위난 시에 국정을 책임지게 된 대통령 권한대행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의 헌신과 책임윤리도 매우 중요하다. 탄핵 반대 시 민운동에 올라타기보다는 현 시국에 당의 정체성을 새롭게 세워야 할 여당의 책무도 막강하다. 

사회학 전공자이자 시민사회 관점에서 필자는 갈 수록 심화되는 사회 분열을 넘어 통합과 화합으로 가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 통합으로 가는 문지방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로 누가 있었나를 생각해본다. 여전히 시비를 거는 사람 들도 있지만 그래도 김대중 유산의 규범적·상징적 의미는 살아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핵심은 그의 소 통 철학에 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행동하는 양심 이 되자”는 좌우명도 이제는 양극 대립을 넘는 소통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돼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선과 악의 단순한 이분법은 반드시 극복돼야 한다. 극단적으로 분열된 양대 진영 사이의 소통을 매개하고 증진하는 차원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한다. 어느 한 진영의 편에서 상대 진영의 말을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확신편향의 태도는 김대중의 소통 철학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당파적 입장을 떠나 이제는 정의의 목적을 공존에 두고 분열된 사회를 화합으로 이끄는 소통 정의의 관점에서 행동하는 양심을 구현해야 할 때 다. 이것은 개방적 입장에서 양 진영의 독단이나 단 견, 오류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동시에 경청의 가 치가 있는 요구나 주장을 추출해 공유할 수 있는 소 통의 지평을 넓혀가는 행동을 뜻한다. 김대중은 노 동자 권리 보장, 여성 권리 신장, 사회보장 제도의 도 입과 함께 동서 화합, 진보·보수의 공존, 남북 이산 가족의 상봉을 비롯한 남북 화해와 협력으로 공존을 향해 행동하는 양심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오늘의 탄핵 정국에서 보자면 “행동하는 양심”은 정파를 넘어 양 진영의 소리를 공정하게 듣고 해석해 순환 가능한 메시지로 입력하는 소통의 선구자가 되 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통의 출발점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그 말을 상대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상보성의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이 원칙에 따라 꽉 막힌 파국의 상황에서 변화와 소통의 지평을 여는 활동이나 사업을 기획하고 실천해야 할 때다. 


※이 글은 2025년 2월 8일 김대중학술원(원장 백학순) 격월 연구회 의에서 발표했던 것을 대폭 수정·보완한 것이다. 황태연, 신진욱이 지 정 토론을 했다. 이만열, 최상용, 라종일, 김용덕 같은 원로 학자를 포 함해 한홍구, 노명환, 유종성, 유종일, 박진경 등 젊은 학자, 그리고 이 종원, 홍완석 등 해외 전문가 등 모두 24명이 참석했다. 필자의 발제를 읽고 비판해준 데 대하여 감사를 표한다.


월간중앙(2025년 3월호-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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