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Sociology 의 <이 달의 사회학자>, 한상진 교수와의 대화

(Current Sociology에서 2017년 2월, 한상진 교수를 “이 달의 사회학자”로 선정한 후 한상진 교수와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그 내용이 Current Sociology의 페이스북에 5회에 걸쳐 소개되었다. 이 내용을 편의상 번호를 매겨 번역했다: 각 회의 말미에 소개된 날짜와 주소를 밝혔다. 참고로 이 학술지는 "세계사회학회(ISA: International Sociological Association)"의 공식 저널 중 하나로, 1952년 세이지 출판사(Sage Publications)에서 첫 발행되어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회학 학술지의 하나이다.) 

1) 우리가 뽑은 <이 달의 사회학자>, 서울대 한상진 명예교수를 만나보세요. 어떻게 사회학을 공부하게 되었는가를 아래에 회상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고등학교 학생일 때 저는 한국에서 4.19 학생혁명(1960년)과 5.16 군사쿠데타(1961년)를 겪었습니다. 이념성향과 정치적 전망이 정반대되는 두 사건이었죠. 혁명 이후 교원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선생님께서 쿠데타 이후 학교를 떠나시는 슬픈 광경을 목도했습니다. 사회학에 대한 저의 관심은 이런 경험 속에 타올랐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학생까지 포함해서, 어떻게 역사를 바꿀 수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1963년 시작한 서울대학교 학부시절은 혼란과 긴장으로 점철된 시절이었습니다. 1964년 대학 캠퍼스는 박정희 군사정부가 주도한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저항과 시위로 뒤덮였습니다. 일제 강제합병 시대가 남긴 혼란스러운 깊은 유산 때문에 학생과 교수 및 시민들은 대부분 당시 추진되던 거래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민족 주체성의 토대를 찾고자 하는 소망으로 “한국사상 연구회”라는 서클을 조직했습니다. 그러나 1965년 정부는 이 연구회를 불법 조직으로 규정하여 폐쇄시켰고, 저는 군대로 징집되었습니다. 1970년 이후의 대학원 생활도 혼란과 불확실로 얼룩진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특히 위르겐 하버마스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이유로 저는 반공법 위반이라는 혐의에 연루되었습니다. 반공법은 당시 군사정부가 휘둘렀던 가장 무서운 무기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저는 간신히 사회학을 공부하러 미국 유학의 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1979년에 푸코와 하버마스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독에 가서 클라우스 오페(Claus Offe)와 함께 2년간 박사 후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1981년에 귀국하여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되었고, 곧이어 보수적 권위주의 세력과 급진적 학생운동의 혁명노선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공적 논쟁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이 논쟁을 통해, 그리고 제가 수행한 경험적 연구를 바탕으로, 저는 제 나름의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제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민주적 변혁의 힘은 당시 수적으로 증가하던 중산층에 속하면서 젊고, 교육수준이 높고 민중(民衆)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정체성을 획득한 집단이었습니다. 여기서 출발했던 저의 중민(中民)이론은 화이트칼라층과 전문직종사자들이 1987년 6월 민주화 대항쟁에 광범하게 참여하면서 공적 인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1991년과 1992년에는 뉴욕 콜럼비아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2000-2003년 동안 김대중 정부의 대통령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습니다. 2010년에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했으며 그 뒤 매년 가을 학기, 북경 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에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과 중민연구소를 설립하여, 제가 지식인으로서 출발했던 지점, 즉 비판이론과 중민연구로 돌아와 요점을 재검토하고 다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7년 2월 3일 오후 8시 11분, Current Sociology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CurrentSociology/photos/a.340442032705502.76907.337522709664101/1255200391229657/?type=3 )

2) Current Sociology 63권 1호(http://journals.sagepub.com/toc/csi/63/1 )에 수록된 “해방적 파국, 기후변동과 위험사회”에 관한 특집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특집은 이 달의 사회학자 한상진 교수가 조직한 것입니다. 그가 왜 특집을 만들게 되었을까요?

제가 해방적 파국의 개념을 얻은 것은 2013년 11월 독일 포츠담에서 개최된 기후변동 워크숍 때 입니다. 울리히 벡 교수로부터 이를 얻었습니다. 제가 해방적 파국 개념에 매료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 개념은 저의 전문 연구영역인 비판이론의 에토스를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 개념은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중층결정된 모순의 한 초국적 사례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셋째, 파국은 해방의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만 종말론적 방향으로 진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 개념으로 우리는 이런 갈라짐의 핵심 요인들이 어디서 오는가를 질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은 해방적 잠재력이 어디보다 동아시아에서 더 크다는 점입니다. 아직도 살아 숨쉬는 오래된 문화 전통이 위험사회의 현실에 대한 감수성을 높일 뿐 아니라 위험사회의 극복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벡 교수를 포함한 “코스모-기후”(Cosmo-Climate) 연구팀을 2014년 7월 서울로 초대했습니다. 벡 교수는 해방적 파국과 함께 ‘탈바꿈’(Metamorphosis) 개념을 가져왔는데, 우리는 이 개념들에 관해 밀도 있고 자극적인 토론을 여러 차례 벌였습니다.

(2017년 2월 7일 오전 4시 21, Current Sociology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CurrentSociology/posts/1258386667577696 )

3) 이 달의 사회학자, 한상진 교수가 쓴 논문 “동아시아 관점에서 본 해방적 파국”
(http://journals.sagepub.com/doi/pdf/10.1177/0011392114559851)을 읽어보았나요?
그의 논문이 우리 저널 63권 1호( http://journals.sagepub.com/toc/csi/63/1  )에 실린 특집 주제와 어떻게 어울릴까요?   

저는 행위이론의 관점에서 사회변혁을 밀어주고 이끄는 능력을 상대적으로 많이 갖춘 행위자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고, 다른 행위자들과 어떻게 다르고, 왜 그런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통계분석도 수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통상적인 사회학의 이론 도구들, 이를테면 몇 가지 객관적 변수들을 조합하여 만든 사회계급 같은 시각으로는 사회정치적 쟁점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체성 개념은 잘 작동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적 소통의 관점에서 정체성 개념들을 구성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관하여 시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 아니면 정부의 눈으로 보는가의 차이가 사회 정체성의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 발견에 고무되어, 저는 4가지 정체성 유형을 구분했습니다. 공공시민(Public Citizens), 국가시민(State Citizens), 민중시민(Popular Citizens), 복지시민(Welfare Citizens)이 그것입니다. 경험적 분석은 두 가지 축의 교차로 시작합니다. 첫째는 방금 말한 시민-정부 축이고 둘째는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중산층-하층의 축입니다. 공공시민과 국가시민은 똑같이 중산층에 속하지만 시민-정부 축에 의해 나누어집니다. 마찬가지로, 민중시민과 복지시민은 하층이라는 점은 같지만 시민-정부 축에 따라 분할됩니다. 연구결과를 보면, 공공시민과 민중시민의 해방적 잠재력이 현저히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2012년 서울, 베이징, 도쿄에서 실시한 시민의식조사를 분석해보면, 2011년 일본 후쿠시마의 재앙 이후 공공시민들이 원자력 발전소 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국가시민보다 더 큰 해방적 잠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민중시민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저는 이에 관해 논문들을 발표했고, 현재 동아시아 위험사회의 맥락에서 공공시민들의 해방적 잠재력을 보여줄 단행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17년 2월 9일 오전 6시 52분, Current Sociology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CurrentSociology/posts/1260307387385624 )

4) 이 달의 사회학자, 한상진 교수에 대해 좀 더 알아봅시다. 그가 생각하는 연구의 보다 폭넓은 함의는 무엇일까요?

저의 연구에는 제2근대로의 변혁이라는 더 큰 프레임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제2 근대는 심각한 논쟁거리입니다.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분명치 않아요. 보다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위험협치의 방향일까요, 아니면 더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길일까요, 혹은 파퓰리즘적인 길일까요? 미리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심각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지만 지형은 유동적입니다. 이 점은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취약한 나라들에선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이론과 실천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합니다. 저는 해방적 변혁의 길을 연구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점은 저는 지금까지 급진화된 양극 대결의 변혁을 지지한 적이 결코 없었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저는 아시아의 정치철학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중도 변혁의 전략을 지지해왔습니다. 중도 변혁의 정치는 고유한 원리와 윤리를 갖고 있습니다. 폭넓은 협력의 틀을 개방하여 그렇지 않으면 분열되기 쉬운 사회집단들을 연결하려 합니다. 제가 이처럼 이론과 분석에서 중도 변혁의 입장을 견지해왔기 때문에 아마도 2016년 1월 한국에서 국민의당이 창당할 때 공동 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국민의당은 2016년 4월의 총선에서 국회의석 300석 중에서 38석을 얻어 제3당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론과 실천에서 큰 승리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미래의 전망은 아직도 불투명합니다. 계속되는 대규모 촛불시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결정, 헌법재판소 심의를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래는 정치인을 포함하여 사회집단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2016년 12월 20일, 북경대의 마지막 강의에서 상호작용하는 두 가지 역사적 축에 주목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하나는 서로 연합하여 앞으로 나가는 축(聯進環)이고 다른 하나는 연합하여 뒤로 향하는 축(聯退環)입니다. 

(2017년 2월 14일 12시 14분, Current Sociology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CurrentSociology/posts/1264154777000885)

5) 한상진 교수의 미래 연구 영역은 무엇일까요? 아래의 글과 함께 한 교수와의 인터넷 연결정보를 추천합니다.

저에게 흥미로운 미래연구의 한 주제는 제2근대와 합리성의 관계입니다. 베버의 목적합리성 개념은 근대의 두드러진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그 한계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베버의 1907년 이해사회학에 대한 글은 상당히 흥미롭지만 모호하게 광범한 개념에서 출발했습니다. ‘Richtigkeitsrationalität라는 개념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richtig’ 라는 용어는 단순히 규범적 의미에서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단어는 우리가 명료하게 인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규칙화된 빈도 혹은 유형화된 빈도에 기초하여 우리가 종종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상식 또는 공감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베버의 글을 유심히 살펴보면, 베버는 이 개념을 합리성의 폭넓은 배후개념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개념으로부터 특정한 유형의 합리성들이 역사 속에서 진화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베버는 논리적 일관성과 명료성을 갖춘 합리적 행동의 이념형을 뒤에 구성할 때, 이 개념을 완전히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지점으로 되돌아가서 합리성 개념을 다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버마스는 소통적 합리성 개념을 통해 베버를 넘어서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감정이 합리성과 연결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여기서 감정은 단순히 예측불허의 심리적 성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적 삶 속에서 공유된 ‘마음의 장치들’을 깊숙이 관통하는 ‘공감’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상식을 함께 나누듯이 공감을 함께 나눕니다. 저는 베버의 Richtigkeitsrationalität 개념의 뿌리는 공감과 상식의 합리성에 근접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 저는 이 개념이 제2 근대를 뜻하는 합리적 정치와 판단의 잠재적 토대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물음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공감(情)과 이치(理)의 균형을 강조하는 중국의 문화적 전통과 그 산물인 정리(情理)사회와 정리정치가 두드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중국의 현저한 문화 전통이 베버에서 주변화 되어 버린 합리성 개념과 유익하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탐색하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제 2근대 변혁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공감적’ 합리성의 개념을 명료하게 확립할 수 있을지를 관심 있게 살피고자 합니다.

추천 사이트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http://www.joongmin.org/

중민연구소: http://www.hantheory.org/

Europe-Asia Research Network (EARN): http://www.earnglobal.org/

Sang-Jin Han on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Han_Sang-jin_(sociologist)

Theory, Culture & Society에 실린 논문(2016): http://journals.sagepub.com/doi/abs/10.1177/0263276416672535
(“Cosmopolitan Sociology and Confucian Worldview: Beck’s Theory in East Asia” by Sang-Jin Han, Young-Hee Shim and Young-Do Park)

위의 논문을 요약 소개하는 2분짜리 비디오(영문): 
http://www.theoryculturesociety.org/video-cosmopolitan-sociology-confucian-worldview-becks-theory-east-asia/

(2017년 2월 17일 5시 39분: Current Sociology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CurrentSociology/posts/126765550665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