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심영희 한양대 연구석좌교수

△심영희 교수 촛불 정치의 결과로 한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민주정부가 출범했습니다. 개혁의 좋은 기회가 왔어요. 그러나 걱정과 우려도 있습니다. 존던 교수는 몇 년 전 한국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민주주의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오늘의 시점에서 어떤 답을 주시겠습니까?

△존던 교수 나의 대답은 꽤 명료합니다. 같은 현상의 앞뒤에 두려움과 희망이 있으니까요. 시민이 좋은 판단을 내리고 정치지도자가 분명한 의지로 이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물망 민주주의죠. 민주주의는 정치적 선택의 구조이고 정치권력의 구조입니다. 때문에 시민과 지도자 사이에 상당히 안정적인 상상력의 공통기반이 필요해요. 여기서 지도자는 대통령 같은 최상위 엘리트만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집권세력을 뜻합니다. 실천적 현실주의, 불필요한 악의의 부재가 필요해요.

△한상진 교수(이하 직함 생략) 악의의 부재요?

△존던 적대감을 뜻합니다. 적개심은 해를 미칩니다. 정치적 행위를 보면 남을 해치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적 반대자를 몰아내거나 외국인을 공격하는 행위 등, 정치에는 앙심과 보복이 작용합니다. 남을 공격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입니다. 만족감이 금방 와요. 그러나 좋은 지도자는 그렇게 하지 말 것을 설득하는 지도자입니다. 모든 인간은 가치가 있기 때문에 징벌의 눈으로 남을 처벌하려고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매한 짓이죠. 근본적으로 병든 태도입니다. 좋은 실적을 낸 지도자는 합리적 협동의 토대를 찾는 것이 반대자를 몰아내는 것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잘 압니다.

△한상진 그런데 딜레마가 있어요. 대선에서 승리한 권력집단은 과거 정부의 비리를 단죄하려 합니다. 그러나 패배한 집단은 이것을 정치보복으로 봐요. 진보적 성향의 대중은 강력한 적폐청산을 요구합니다. 실천적 현실주의, 어떻게 추구할까요?

△존던 한국이 부딪히는 정치문제입니다. 논쟁을 해야 합니다. 물론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나치체제가 무너진 이후, 그 지도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들을 법정에 세우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이들을 사형시킨 것은 특별히 현명한 일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이들을 재판에 회부한 것은 옳아요. 두 가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얼마나 나쁜 일을 했는가를 확인하는 것, 나쁜 일을 했기 때문에 고통을 주는 것. 그 가운데 후자는 별 가치가 없지만 전자는 매우 중요합니다. 나쁜 일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국민이 알아야 하니까요.

△한상진 김대중은 정의를 추구하면서도 화해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정치의 궁극 목적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더불어 사는 정치공동체를 만드는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존던 그런데 그 균형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능란한 기술과 행운이 필요해요. 과거를 규명하는 작업은 정의의 몫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예요. 핵심은 과거가 얼마나 나빴는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은 미래를 만들 것인가에 있습니다. 미래를 더 나쁘게 만들 수도 있는 행동은 피해야 합니다. 좋은 리더십이 있으면 인간은 충분히 현명해질 수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넬슨만델라가 좋은 보기죠.

△심영희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면 한국의 최근 정치상황을 살펴볼까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구속, 재판,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낍니까?

△존던 끔찍한 비극입니다. 한국 국민에게도 비극이죠. 우스꽝스럽고 집단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가 잘못했기에 인과응보로 무너졌지만 추악한 일이고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훌륭한 나라가 이런 방식으로 지도자를 잃는다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슬픈 일이죠. 또한 매우 한국적인 과정입니다. 그 결실은 이미 맺었고 더 이상은 없습니다. 잘못한 지도자를 몰아내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작동되지 않습니다. 리더십은 사람들을 어디론가 인도합니다.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지도자, 사람들이 따르기로 마음을 정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시민들이 그런 지도자를 만들 수는 없죠. 그런 지도자가 제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가 시민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합니다. 김대중은 그런 지도자였습니다.

△심영희 한국 정치의 현실에 다소 문제는 있지만 민주주의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존던 민주주의는 일종의 학습과정입니다. 때로는 불편하고 그 실상을 명확히 보기 어렵죠. 그러나 한국인은 부단히 민주주의를 배워왔습니다. 많은 것을 깊게 터득했어요. 그러나 국민이 따를 가치가 있는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한상진 귀하는 김대중이 1992년 대선에서 패한 뒤 영국 캠브리지에서 외롭고 우울하게 지낼 때 그를 만났습니다. 그 때 가장 강력한 인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고 예상했나요?

△존던 몰랐어요. 대통령의 길을 가로막은 장애는 김대중 안에 있던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구조에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될 때처럼 그는 1997년 말에 정말 운이 좋았죠.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외환위기는 절대적 파국을 가져왔지만 이것이 얼마나 나쁜지 누가 압니까? 아직 초기 단계였으니까요. 이에 따른엄청난 행운이 없었다면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될 줄은 몰랐지만, 나는 진정으로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로부터 떨리는 감흥을 느꼈습니다. 그가 캠브리지로 올 때, 나는 그가 매우 인상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대학에 모여 그를 맞이할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나는 여러 번 그를 만나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의 경험이 나를 압도합니다. 영국 근대사를 통틀어, 외국인과 그렇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정치인이 있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김대중은 정말 특출했습니다. 그는 상처를 어루만지고자 캠브리지에 왔지만 포기하지 않고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찾았습니다. 이 과정이 몹시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가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정치적 도전의 심층구조를 비슷한 눈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물이었습니다.

△한상진 리더십에는 여러 요소가 있는데, 오늘의 한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존던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시민과 소통하는 것, 이것이 본질적입니다. 비전의 올바른 내용을 묻는다면, 코스모폴리탄 한 것이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귀중하기 때문에 보편적 선을 지향해야 합니다. 민족주의는 답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이 누적적으로 파괴되고 있어요.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오염된 현실 정치에서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선하고 깨끗한 권력, 우리가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권력이 있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이해타산의 권력정치에 반대하는 강력한 시민의 압력이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해요. 시민과 정치가 상호작용하는 민주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심영희 귀하의 글을 읽어보면, 민주주의는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지만, 그 자체가 좋은 정부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진단이 인상적입니다. 좋은 정부를 위해서 어떤 추가 요인이 가장 중요할까요?

△존던 핵심은 교육에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유럽 전통에 못지 않게 동아시아 전통에도 뿌리가 깊은 생각입니다. 시민들이 더불어 같이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교육을 통해 터득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매우 중요합니다. 때문에 나는 민주주의를 위해 정치교육에 큰 무게를 둡니다.

△한상진 근래 사회협치 얘기가 한국에서도 만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취된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김대중 시절에는 국민들이 외채 상환을 위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에 나섰습니다. 노사정협의도 처음에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존던 그 때의 정책이나 경험은 지금도 귀감이 됩니다. 특히 유의할 점은 한국은 재벌로 인해 매우 독특한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삼성 같은 대기업이 고용원이나 시민들에게 어떻게 책임지게 할 것인가? 이런 과제는 강제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정치권력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금방 효과가 나지는 않아요. 사실 재벌기업들은 이윤과 소유구조에 관하여 법을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탈법적 행위는 중지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사람들이 현재와 다른 사회의 그림을 마음 속에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교육은 다시 중요하죠. 시민의 자각과 참여, 의지가 협치의 필수조건입니다.

△심영희 한국에서도 포퓰리즘의 위험에 대한 경고음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당들이 유권자의 눈치를 보면서 무책임하게 복지 기대를 높이는가 하면, 여전히 대중동원의 정치를 하려고 해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고 무엇을 희망할 수 있나, 다시 한번 여쭈어 봅니다.

△존던 포퓰리즘은 매우 잘못된 민주주의입니다. 불행히도 포퓰리즘은 이제 더 이상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한상진 포퓰리즘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존던 아녜요. 이것은 병든 민주주의를 뜻합니다. 민주주의의 구조는 같아요. 같은 구조지만 병이 든 거죠. 모든 정치가 그렇듯이 민주주의도 병리현상에 쉽게 빠집니다.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지키는 것은 엄청난 업적이죠. 병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빨리 병들어요. 어디서건 발생합니다. 이것을 막아야 할 책임은 내 생각에 시민에 있습니다. 정치인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민 모두의 책임이죠. 민주주의가 어떻게 부패하는가? 순전히 외부적인 부패는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운영되는 방식에 따라 민주주의가 부패합니다. 포퓰리즘은 부패되기를 허용하는 민주주의를 뜻합니다. 어떻게 이것을 역전시킬 수 있는가? 민주주의는 시민에게 주어진 권력이자 책임입니다. 권력을 나쁘게 사용하는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준다면, 이것은 시민의 과오입니다. 민주주의는 모두의 이익에 봉사하는 단순한 기회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책임을 지는 정치, 책임의 소재를 묻는 정치입니다.

△심영희 강력하게 시민의 각성을 요구하는 결론 같습니다. 2시간 동안 이렇게 응집된 주제들을 토론할 수 있어 대단히 기쁩니다. 또한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리=심영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