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공감] 한상진 '분열의 정치, 해법은 ‘사이’에 있다' 프린트   
중민  Email [2026-01-05 15:49:20]  HIT : 538  
○ 방송 : CPBC 라디오 <김준일의 뉴스공감> (FM 105.3 MHz 18:03 ~ 19:00)
○ 일자 : 2025년 12월 31일 수요일
○ 진행 : 김준일 시사평론가
○ 출연 :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2025년의 광장은 ‘다름’을 넘어 서로를 지우려는 ‘전쟁터’였습니다. 이 극단의 시대를 건너갈 지혜를 사회학적 통찰로 구해보겠습니다. ‘중민 이론’의 창시자시죠.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함께합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연말에 바쁘실 텐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올 한 해 정말로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이렇게 한 해 동안 많은 일이 있을 수 있나 기억을 되짚어보면 굉장히 많은 갈등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진보와 보수의 갈등도 있었고 그거 외에도 갖가지 갈등들이 있었는데. 이게 존재론적 위기다. 지금. 그러니까 과거에는 서로 다투더라도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까지는 나아가지 않으려는 선이 있었는데, 굉장히 민주화된 이후로 이 정도까지 갈등이 심화된 적은 없다고 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어떻게 보십니까? 교수님은.

▶비관적인 관찰과 전망이 많습니다. 저희 주변에도 많고요. 저는 사회학자로서 그런 비관적인 전망에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어찌 됐든 우리는 이 사회 안에서 희망의 거점을 발견해야 된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상황이 어렵게 됐느냐. 이건 간단히 짚을 필요가 있는데. 하여튼 적대적 분열, 이것이 지나치게 심화됐다. 그러므로 인해서 과거에는 아까 사회자께서 말씀하셨듯이 싸우더라도 미래에 대해서 그래도 희망이 있었는데. 희망이 있었다는 얘기는 공통의 화두가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민주화를 해야 된다. 예컨대. 경제 성장을 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이건 간에 동의했다 이 말이에요. 미래에 대한 공동의 희망과 화두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싸우면서도 미래를 그래도 낙관적으로 보고 우리는 해낼 수 있다라고 하는 자신감을 가졌던 건데. 근래에 우리가 발견한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거예요. 미래가 어떻게 갈지 정말 예측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이게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비관적인 전망이 더 강화되고 심화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관찰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군요. 교수님께서는 예전에 중민 이론이라는 거를 말씀하셨고. 한국 사회 변혁의 주체 그리고 이런 개혁의 주체로 중산층. 중간에 있는 중도 이런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단순히 기계적인 가운데가 아니라, 소통이 일어나는 그런 중간이 되어야 하고 그게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지금 이런 분열 상황에서는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제가 중민 이론을 주창한 지 금년이 40주년이 됐습니다. 그리고 중민 이론 배후에는 우리의 고전적인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용 철학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와 있는 이 ‘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그게 지금 새롭게 해석돼야지 되는 건데. 저도 과거에 그랬고 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하고 있는 건 ‘중’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가운데’를 뜻한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이번에 여러 가지를 검토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학문적인 운동이라고 할까. 그것은 ‘중’은 그냥 ‘가운데’가 아니고 ‘사이’다.


▷‘사이’다?

▶‘사이’다. 그래서 이 ‘중’이 가지고 있는 뜻은 한편으로는 ‘중간’일 수도 있고 ‘사이’일 수 있습니다. 무엇 무엇과 무엇 무엇 사이라고 하는 게.


▷진보와 보수 ‘사이’. 예를 들면.

▶그렇죠. 중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 말 뜻에서 보면 “너는 중간에서 살아”라고 하는 얘기는 어디에 휩쓸리지 말고 예 또 타협을 해라라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사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어떤 딱 중간에 있는 게 아니에요. 이게 빈 터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사회로부터 시작된다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고 철학적으로 굉장히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로 이 ‘중’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이 ‘중’이라고 하는 기본 용어를 이제는 ‘사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재정립함으로 인해서 지나치게 양극화되고 분열되어져 있는 오늘의 현실 세계를 넘어서서, 뭔가 양 진영 배후에 그래도 남아 있는 같이 공유하는 어떤 세상, 꿈, 희망 그걸 우리가 되찾자라고 하는 게 ‘사이’에 남겨져 있는 중요한 의미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의 정치권의 상향을 대입해 보면 사실은 강성 지지자들의 양 정당. 민주당이나 보수 정당 국민의힘이 상당히 휘둘린다는 얘기들이 나오거든요. 그 얘기인즉슨, 방금 말씀하셨던 그 정당 지지자들 중에서도 이념적 스펙트럼이 상당히 다양하잖아요. 그런데 극단적인 사람들이 이 주도권을 쥐고, 거기에 또 그 사람들이 목소리를 많이 내고. 그러다 보니까 정당끼리 더 갈등이 심해지고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이런 악순환들이 벌어지고 있단 말이에요. 거기에서의 각 정당 내에서도 좀 더 ‘사이’ 그거를 중재할 수 있는 그런 세력이 필요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봐도 이런 중도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중요해졌다. 이렇게 좀 이해를 하면 되는 건가요?

▶그런데요, 각 정당 안에서도 그 사이를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정당 자체가 하나의 힘은 아니니까요.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죠.

▶여러 스펙트럼이 있고 여러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당이 공론을 활성화시켜서 다양성을 회복하면서도 당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어떤 그런 운동을 한다고 하면 사이라고 하는 개념이 상대적으로 정당 안에서도 열릴 수 있어요. 그런데 오늘날. 과거에는 꼭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만, 오늘날의 양대 정당을 보면 정당 안에서 뭔가 다양성을 열어주고 포섭하고 섭렵해 가면서 나가자라고 하는 그 사이 개념이 쓸 수 있는 근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필요한 것은 어찌 됐든 여야가 큰 양대 정당으로 있고, 양대 정당으로 존재하고 기능한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정책 정당으로 경쟁하는 단계로 들어가면 훨씬 바람직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지금은 지나치게 패권 경쟁 쪽으로 지금 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 상황 속에서 놓고 본다면 사이라고 하는 개념은, 하여튼 양대 정당으로부터 또는 양대 진영으로부터 뛰쳐나와서 그 사이로 와서 사이를 걷자. 우리가. 그래서 그건 꼭 정당만이 아니고 제 생각으로는 우리 일상생활에도 충분히 적용됩니다. 나와 내 가족 그 사이에도 ‘사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있어요. 나와 내 친구.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생활하고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사이라고 하는 개념을 깊게 선착하면 결코 나 중심적으로 가지도 않고, 상대방을 따라가지도 않는 것이고, 그 사이에 있는 뭔가 공유하면서도 또 같이 실현해 갈 수 있는 어떤 공통의 기반이나 희망이나 꿈 이걸 찾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 ‘사이’라고 하는 개념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개념이고, 철학적으로 좀 그렇게 많이 지금 거론이 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게 단순히 중간에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 거는 아니다라고 하셨지만. 과거에 양 정당을 제외한 현실 정치로 좀 대입을 해보면 소위 말해서 중도 정당을 표방했던 정치 세력들 제3의 세력들이 대부분 실패해 왔던 역사들이 있잖아요. 현실과 이상이 괴리가 있는 거 아니냐. 이런 지적도 나와요. 어떻게 보십니까?

▶그러니까요. 그건 저도 동의해요. 저 자신도 제 얘기지만 2014년에 국민의당을 창당하는데 제가 창당 준비위원장 역할을 하고. 그 당시에 제가, 야 이렇게까지 됐는데 이제는 정치를 한번 해볼까? 그런 생각도 없잖아 했지만, 그래도 나는 학자의 길을 가겠다라고 해서 첫 번부터 나는 학자의 길을 가고 당을 창당하고 유세를 하는 데까지는 하지만 직접 정치를 하지 않겠다라고 일단 정치를 떠났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국민의당이 말하자면 제3의 정당으로 또는 중도 정당으로 또는 사이를 걸을 수 있는 정당으로 잘 성장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지를 못했어요. 결과적으로. 그래서 그게 참 아쉽고 또 저로서도 여러 가지로 복잡한 소회를 느끼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정당의 경우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동안에. 그런데 지금 현재 이 상황은 물론 정당을 재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워낙 이 세계 자체가 한국만이 아니고 워낙 세계 자체가 양대 진영으로 분열되어 가고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으로 지금 질주하고 있어요. 미국이 단적으로 그렇게 보입니다. 지금 말할 것도 없어요.


▷미국도 그렇죠.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하는 미국이나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그러니까 세계 도처가 지금 이렇게 양극 분열로 지금 막 질주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른 말로 얘기한다면 우리가 지난 한 200년 또는 길게 잡으면 300년 동안 걸쳐서 쭉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이룩해 오고 건설하려고 노력했던 이른바 ‘근대 모더니티’라고 불리우는 이 시대가 이제는 정말 거의 이게 마지막에 온 게 아니냐라고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이 전체적인 시대 자체가 지금 비틀거리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에다가 우리가 희망을 걸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이제 이 시민들이 정당은 그렇다 하더라도 시민들이 보다 더 오늘 상황을 주시하고, 그 가운데서 뭔가 공생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서 자각하고 결사를 하고 운동을 벌이는. 그래서 그것이 어느 한 나라가 아니고. 우리나라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있다고 저는 생각하지만. 여러 곳에 전파돼서 세계적인 어떤 공감과 연대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중요한 전환의 시점으로 현재 우리가 진입하고 있는 게 아니냐. 근대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이 정말 필요한 때가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죠.


▷알겠습니다. 그래서 희망의 단초를 정치권 밖에서 또 찾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교수님께서도 최근에 'BTS와 아미(ARMY)'의 팬덤 현상이라든지, 아니면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 속의 저항 방식 이런 것들에 주목하시는 글도 쓰시고 그랬는데. 새로운 시민성을 그런 방금 문화적 현상과 어떻게 결부시킬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요, 지금 한국 정치가 너무 양극 분열, 적대 논리 이런 걸로 가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참 절망하고 굉장히 실망을 많이 하고 있지만. 제가 사회학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우리 한국의 시민사회는 그래도 굉장히 역동적입니다. 그중에서 일부가 정치적으로 동원돼서 결과적으로는 이 양극 분해되어지는 정치의 한복판에 이들이 서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러나 이들이 결코 다수가 아니에요. 저는 사회학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그렇고 국제적으로도 그렇고. 저는 세계 33개 도시를 도시 시민들을 중심으로 해서 의식 조사를 광범위하게 여러 번 실시합니다. 내년에도 실시합니다. 이런 걸 보면 세계 다수의 시민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조직화되고 동원되는 세력들은 그런 성격을 지니고 있어요. 그러면 이제 이걸 어떻게 뚫을 수 있느냐라고 하는 문제가 나오는데. 그래도 경험적으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예의 하나가 예컨대 방탄소년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성공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설명하면 많아요.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제가 강조하는 건 뭐냐 하면 이 방탄소년단이 성공한 이유는 물론 디지털 기술이 중요하고 또 그 기술로 여러 문화를 섭취해서 리듬을 짜고 와서 다시 재조립하는. 아마 현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그런 새로운 기술의 힘입은 바가 많이 있지만. 그러나 또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뭐냐 하면 방탄소년단의 그 음악이, 또는 그들의 율동이, 또는 그들의 삶이, 그들의 제스처가 결국은 엄청난 힐링. 치유의 효과를 갖고 오는 거예요. 그건 무슨 말이냐. 사람들은 다 지금 굉장히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상처에 시달리고 있어요. 왜냐, 우리 사회가 우리가 지금 위험사회에 살고 있으니까요. 엄청난 위험에 지금 시달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괴롭습니다. 그런데 이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보면서 보면서 아미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뭉쳐서 세계적으로 지금 확산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뭉치는 협력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어떤 이해타산에 있는 게 아니고 바로 이 치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거기서 위로를 받고. 그래서 그걸 같이 공유하려고 하는. 그래서 이 자발성이 나오는 겁니다. 이 운동이 막 나오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또는 세계가 지금 극단적인 위험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그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나도 참 힘들지만 또 같이 힘든 다른 사람들과 의존하고 부축하고 서로 협력해서 어깨동무를 하고 그래서 같이 협력해서 나가자라고 하는 어떤 그런 연대가 자발적으로 오늘날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현상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좀 여쭤볼 게 많아서. 너무 길게 말씀하시면 시간이 부족하니까 조금만 짧게 말씀해 주시고. 제가 궁금한 건 그런 거예요. 아미가 뭐 힐링도 있고 이런 건데. 이게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그렇다고 세상을 변화하는 힘으로 가는 거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잖아요. 제도가 있고 정치도 있고 이런 것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거를 변화의 힘으로 바꿀 수가 있는지. 저는 그게 좀 궁금하더라고요.

▶그게요, 아직은 뚜렷한 전망이 없어요. 말하자면 그렇게 하려고 하면 새로운 정당이 나와서 그 정당 속으로 그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흡수해야지 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양당 체제가 딱 확립되어져 있고 우리나라만 놓고 본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곧장 정치적인 해결책을 지금 찾는 것은 내 눈에는 그렇게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아까 전에 대화와 소통, 타협 이런 걸 굉장히 강조하셨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한 불법 비상계엄에 대해서, 내란과의 타협은 없어야 된다. 민주주의를 그렇게 수호하는 것이다라는 그 목소리들도 굉장히 어느 정도 일리가 있고. 그것이 어떻게 보면 또 지금의 국민들의 정서이기도 좀 한 것 같아요. 다수의 정서. 여기에서 고민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불법 비상계엄도 해야 되지만 이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도 완화해야 되고. 어떤 묘수들을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가 있을까요?

▶우리 말에, 과유불급(過猶不及). 과하면 미치지 못함과 같다라는 얘기인데. 저는 오래 전부터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의한 계엄 선포는 불법이고 형식 요건도 틀렸고 다 엉망이다. 이것은 마땅히 단죄돼야 하고 그것에 협력한 사람들은 다 법으로 처단해야 된다. 100% 동의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선제적인 여러 가지 조치 취하는 거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래전부터, 그런데 우리가 조심할 점이 있다. 너무 많이 이걸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나온다. 이게 과연 내란이냐 아니냐라고 하는 것은 좀 신중하게 접근하자. 그건 법원에 맡기고 판결에 맡겨야지 정치권이 나서 갖고 이게 내란이다라고 규정하고 가면 반대에 있는 세력은 어떻게 되겠느냐 이거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결과적으로는 한쪽은 상대방을 내란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다른 쪽은 상대방을 종북 세력이라고 규정하는 거예요. 북한을 따라간다. 얘들은. 그러니까 이게 타협이 불가능한. 같이 공동체를 이루기 어려운 그런 극단적인 악마화가 지금 서로 간에 지금 하고 있는 그런 사정입니다. 아주 어려운 사정입니다. 그래서 이게 하여튼 정치권이 좀 더 정치적인 유불리를 떠나서 뭔가 신중하게 국민과 더불어서 또 기존의 제도를 통해서 해결책을 찾아가려고 노력해야 되는데, 어떤 걸 정치적으로 너무 과도하게 이용하려고 하면 반드시 의도치 않았던 부작용이 마치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지금 그런 사례가 아니냐라고 하는 그런 불안한 느낌이 많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거의 다 돼서 짧게 하나만 여쭤볼게요. 우리가 다시 2026년에 ‘말이 통하는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 시민들 국민들이 어떤 것들을 고민해야 될지 짧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하여튼 무조건 우리는 듣는 연습을 해야 돼요. 


▷듣는 연습. 

▶말을 많이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해요. 할 말을 다 하는 거 아주 중요합니다. 근데 요새 지금 할 말 못 하는 사람 없어요. 듣는 거. 성의를 다해서 최대한 경청하는 거. 경청하면서 내가 뭘 배울 수 있는가. 즉 역지사지의 정신. 이게 역지사지로 공존을 추구하는 어떤 그런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12월 31일의 마지막을 또 이렇게 교수님의 조언으로 마무리했는데요. 우리가 또 많이 새겨야 할 내용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와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준일의 뉴스공감 기자

jyjung@cpbc.co.kr



원문:  http://news.cpbc.co.kr/article/1169531?division=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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